지난 10월 31일 해월정사에서는 성철 스님 14주기 추모법회가 열렸다. 불교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날은 성철스님기념관인 ‘봉훈관(奉訓館)’ 개원식도 함께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성철 종사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계기로 봉훈관 건립을 마음먹었어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불자들의 노고 덕분에 지금 비로소 결실을 맺었습니다.” 해월정사 회주 천제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법규위원장)은 “이곳을 통해 많은 불자가 성철 종사님의 삶과 정취를 느낌으로써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생전 해월정사에 남긴 유품들 전시
해월정사 회주 천제 스님
특히 성철 스님의 처소였던 고심당(古心堂)도 일반인들에게 공개함으로써 불교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낡은 침상과 탁자, 손때 묻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성철 스님의 고심(古心)을 실감케 했다.
봉훈관은 성철 스님 생전 해월정사에 남긴 유품들을 전시한 곳으로 지상 4층으로 지은 건물이다. 층별 넓이만 해도 320㎡며, 4층에는 법당이, 3층과 2층에는 친필 전시관과 일반에게 개방된 탁마 공간으로 마련돼 있으며 1층에는 사무·휴식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친필 전시관인 ‘시월전(示月殿)’에는 성철 스님의 친필과 성철 스님이 평소 즐겨 읽던 경전이 보관돼 있다. 봉암사 결사의 유래와 활동에 관한 회고, 교리에 대한 성철 스님의 주석, 불자들에게 남기는 법문 등을 틈틈이 적어두었다가 천제 스님에게 남긴 것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곳이다. “이곳이 아니라면, 그리고 제가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업적이지요. 교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종사님의 혼과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지지와 휴지, 심지어 일력(日歷)을 한 장씩 찢어 남긴 곳곳의 흔적들은 마치 시대를 뒤돌아보는 타임머신을 보는 듯했다. 만년필로 흘겨 쓴 펜글씨에는 수행의 향기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기도 했다. 스님의 친필이 하나씩 각각 액자로 표구돼 가지런히 배치돼 있었으며, 성철 스님의 진영과 함께 스님의 법맥을 이은 용성 스님과 동산 스님의 진영도 나란히 걸렸다.
성철 스님의 글은 다양했다. 일반인들은 물론 불교계 관계자들도 쉽게 알아보거나 해석하기는 어려운 흔적이었다. 30년의 세월을 함께 한 천제 스님만 알아볼 수 있는 글과 메모였다. 천제 스님에 따르면, 해인사에서 백일법문을 하기 전 마음가짐부터 1960년대 불교 중흥의 뜻을 담은 내용, 경전을 소장하게 된 동기, 그 경전의 중요성을 적은 내용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흔적들에는 성철 스님의 개인적 고뇌와 종교적 신념, 한국 불교사의 흐름까지 녹아 있는 듯했다. “평생 부처를 닮기 위해 바른 실천을 지향하셨고, 누구든 올바르게 가르치려 하셨던 그분의 면모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해월정사를 찾으면 일반인들도 성철 스님의 글과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선종의 초조 달마스님의 ‘혈맥론’을 주해한 수기(手記)와 주체적인 관점으로 불교의 방대한 교리체계를 정리하고 각각의 이론마다 의의를 달리 매긴 ‘교상판석(敎相判釋)’도 눈에 띈다. 흘림체로 쓰여 있어 뜻을 판독하기가 쉽지 않지만 생전 성철 스님의 얼이 담긴 문자와 실생활을 엿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만족감을 주는 듯했다. 한국 불교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성철 스님의 사상과 풍모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체험이다. 천제 스님은 “불자들의 신심을 다지는 데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여겨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심했다”며 “조만간 성철 종사님의 글귀들을 번역, 정서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망망대해를 품은 해월정사는 성철 스님의 불심이 묻어나는 곳이다. 동해를 조망하는 명승지 ‘와우산’ 산록에 자리한 이곳은 30년 전 천제 스님이 성철 스님을 모시기 위해 불자들의 도움으로 창건했다. 성철 스님은 해인사를 벗어나, 특히 말년에 해월정사에 머물며 수행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무리한 수행으로 지친 심신을 이곳의 넓은 바다를 보며 회복하곤 하셨어요. 유독 바다를 좋아하셨답니다. ‘넓은 바다와 밝은 월광이 불지를 의미한다’며 이름을 해월정사라 지어주셨죠.”
불자들 신심 다지는 데 좋은 귀감
천제 스님은 불자들에게 행여 부담이 될까봐 증축을 만류하셨던 성철 스님의 말씀을 받들어 공사를 미뤄오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낙후해 부득이하게 개축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성철 스님 생전에는 그 분을 모시는 곳으로 몫을 다했지만, 지금은 그 분이 남기고 가신 친필과 흔적들을 고이 모시고 가르침을 전하는 도량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제 스님은 열다섯의 나이에, 6·25전쟁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49재를 올리기 위해 찾은 불자에서 성철 스님과 처음으로 만났다고 한다. 부친의 빈 자리에 전생의 인연에 따라 성철 스님을 만나게 됐다고 생각한 그는 출가한 후 성철 스님을 평생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모셨다 한다. 누구보다 엄하게 대했지만 올바른 깨달음을 주었던 스님의 수행과 가르침을 잊을 수 없다는 천제 스님. “성철 종사님은 콩나물 한 뿌리를 건지기 위해 개울 따라 먼 길을 내려갔다는 중국 운문 스님의 고사를 늘 강조하셨어요. 그 스님은 다리가 몹시 불편했던 분이죠. 얼마나 검소하셨는지 말도 못해요. 늘 가난을 배우고 검소함을 강조하셨답니다. 그 분의 가르침에 따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휴지 한 장, 종이 한 장도 소중히 여기며 생활했죠.”
해월정사는 매달 음력 초사흘 법회에 성철 스님의 메모를 한 장씩 복사해 신도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봉훈관이 성철 종사님의 가르침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곳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분명 봉훈관과 해월정사는 한국 불교계를 이끌어가는 축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개인의 잣대로 대상을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성철 스님의 유명한 말씀이다. 현대인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메시지였던 것 같다.
해월정사와 성철 스님
동해를 조망(眺望)하는 명승지 ‘와우산’ 산록에 자리한 해월정사는 전 종정 성철 스님을 모시기 위해 천제 스님이 30년 전 불자들의 도움으로 창건한 가람(伽藍)이다. 성철 스님은 넓은 바다와 밝은 월광이 불지(佛智)를 의미한다며 절의 이름을 해월정사(海月精舍)라고 지어주셨다고 한다. 바다를 좋아하셨던 성철 스님은 자주 이곳에 머무시면서 종단의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고 조계종 중흥의 지침을 지시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무리한 수행으로 잃은 건강을 찾는 장소로도 그 역할을 크게 한 곳이기도 하다. 불자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증축을 만류하셨던 뜻을 이어왔지만, 열반하시고 10년이 넘어 당우(堂宇)가 너무 퇴락해 부득이 개축불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작성일 : 10-11-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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